분류 기사 | 인터뷰 |
McCartney's Sidemen - Part 1
| 2007·02·10 19:44 | HIT : 1,995 |
Backing A Beatle Onstage
By Rick Glover

* 이 기사는 2000년 비틀팬이라는 잡지에 실린 커버 스토리입니다. 이번에는 이 기사중 1970년대 윙스시절의 이야기만 번역했고 뒷부분은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링고스타와 함께 투어를 하게되자 피터 프램프톤은 "나에게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믿을 수 없어"라며 입버릇 처럼 얘기하곤 했다. 비틀과 함께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것은 뮤지션에게는 잊지못할 추억거리를 만드는 것이리라. 비틀팬에서는 비틀스 멤버와 함께 연주했던 이들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그 첫번째로 이번호에서는 폴 매카트니 밴드를 다루겠다.

폴 매카트니는 수십년에 걸쳐 많은 밴드를 결성했었다. 오랜기간 동안 활동한 밴드도 있지만 앨범이나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결속된 밴드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Run Devil Run"의 발매에 맞춰 다양한 홍보와 행사가 있었는데, 고전 로큰롤을 부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폴과 함께 무대에 섰다. 핑크 플로이드와 딥 퍼플의 멤버가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은 드문일이지만 Run Devil Run밴드에 이 두 밴드의 멤버가 함께 있었다 - 록 기타리스트중 가장 감성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브 길모어는 Run Devil Run 밴드에 참가함으로써 자신의 경력에 또 화려한 문구 한줄을 추가했다. 록 콘서트중 가장 시끄러운 소리를 기록한 딥 퍼플의 드러머 이안 페이스 역시 흔쾌히 이 프로젝트 밴드에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다른 멤버들로는 베테랑 키보디스트인 피트 윙필드(그 자신은 필자에게 이런 거물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꿈만 같아서 종종 자기 뺨을 꼬집어야 했다고 말했다)와 60년대 영국밴드인 "Johny and Pirates"의 멤버였던 믹 그린이 있었는데 믹 그린은 이 밴드의 사운드에 좀더 날카로운 리듬감을 불어넣었다. 웰쉬맨 그레인트는 한번의 티비쇼에 키보디스트로 등장했었고, 몇몇 아코디언 연주자들 - 헐리웃에서는 덕 레이시, 영국에서는 크리스 홀 - 이 몇몇곡에서 연주를 했다. 이 프로젝트 밴드는 진정한 록음악이 무엇인지 잘 아는 훌륭한 밴드였다.

물론 폴 매카트니의 가장 유명했던 밴드에는 배킹연주자가 없었다. 비틀스는 동등한 네명의 결합체 였던 것이다. 하지만 비틀스 해산후 폴 매카트니가 다시 무대에 서기를 결심한 이후로 폴 매카트니의 백밴드의 역사도 시작된 것이다. 존, 죠지, 링고가 없는 상태에서 폴은 이제 단순히 창작의 중심축이 아니라 자신이 결성한 모든 밴드의 리더 역할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재미있게도 Live Aid나 Prince's Trust, 그리고 최근의 린다 추모공연이나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정식 공연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밴드에 거물급 연주자를 끌어들인 적은 없었다 - 최근에야 Run Devil Run밴드에서 데이브 길모어 같은 이들을 밴드에 끌어들였다. 대신 그는 월드 투어를 하든 홍보를 위한 티비출연이든 여러 다양한 이들을 중용하는 면모를 보였다.

비록 70년대 전반 매카트니 자신은 윙스는 자신의 백밴드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밴드라고 주장하고 앨범의 리드 보컬도 다른 멤버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지만 폴 매카트니의 팬들과 프로모터들에겐 윙스는 백밴드로 비추어졌다. 이러한 인식은 윙스의 멤버가 빈번히 교체되면서 더욱 굳어졌다. 이러한 빈번한 멤버 교체속에서도 윙스의 주축을 이루었던 이들은 바로 폴과 린다, 그리고 기타리스트겸 싱어인 데니 레인이었다. 레인(Denny Laine)은 폴 매카트니와는 1960년대 중반부터 알고지내던 사이였다. 당시 레인이 속한 무디 블루스는 오늘날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프로그레시브 그룹이라기보단 리듬 앤 블루스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하던 그룹이었다. 폴 매카트니와 데니 레인과의 작곡 파트너 쉽은 밴드 결성후 10여년간 지속되는데 이는 존 레논을 제외하고는 폴 매카트니와 함께 가장 오랜기간 동안 음악 활동을 한 것이다.

윙스의 왕좌에 오른 드러머는 또 다른 데니이다. 데디 시웰(Denny Seiwell)은 1971년 가을 밴드 멤버로 영입된다. 미국인 세션 연주자인 데니 시웰은 이미 폴의 최근작 "Ram"에서도 세션 연주자로 연주했었다. 그는 72~73년의 윙스 투어와 "James Paul McCarteny" 티비 스폐셜, "Red Rose Speedway"앨범 작업까지 밴드의 멤버로 활동한다. 그는 팬들과의 만남에서 폴 매카트니와 함께 일하면서 놀란것은 매카트니 자신은 혹독한 연습을 스스로 즐기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컨드 기타리스트인 헨리 멕컬러지(Henry McCullough)는 "Wild Life"앨범작업 후, 윙스의 사운드를 보강하기 위해 영입되었다. 조 카커의 그리스 밴드에서 활동한 바 있는 헨리 멕컬러지는 데니 레인의 추천으로 밴드에 합류했고 밴드에 블루지한 사운드를 불어넣었는데 이런 그의 연주는 윙스의 라이브 사운드의 특징으로 평가받았다. (* My Love에서의 기타 간주가 바로 헨리의 작품이죠) 하지만 헨리 멕컬러치와 데니 시웰은 "Band On The Run" 작업을 위해 윙스가 라고스로 출발하기 하루전 밴드 탈퇴를 선언한다.

1년후 폴은 지미 맥컬러치(Jimmy McCulloch)를 리드 기타로 제오프 브리튼(Geoff Britton)을 드러머로 영입하여 새로운 윙스의 진용을 갖춘다. 지미는 이미 1972년 파리에서 윙스의 "Seaside Woman"세션때 함께 일한 바 있고, 폴의 동생 마이크의 앨범 "McGear"작업에도 참여한 바 있었다.  지미 맥컬러치가 활동하던 블루스 밴드 "Stone the Crows"가 당시 막 해체한 상태에서 폴은 윙스의 멤버로 지미를 영입한 것이다. 지미는 75~76년 "Wings Over The World"투어를 함께하지만 밴드에서의 폴의 지나친 영향력에 싫증을 느껴 "London Town"작업중 윙스를 탈퇴한다.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려던 그는 1979년 돌연 사망하는데 알콜과 마약남용이 그의 사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오프 브리튼은 일련의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지만 몇개월간의 활동 후 미국 출신의 째즈-락 드러머인 조 잉글리쉬(Joe English)로 대체된다. 조 잉글리쉬는 윙스의 혼세션 멤버인 죠지아 출신의 토니 도시의 추천으로 윙스 멤버로 영입되었다. 조 잉글리쉬는 파워풀한 드럼연주를 무대에서 보여주었고, "Speed of Sound"앨범에서는 리드 보컬을 맏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영국생활로 인해 향수병에 걸린 그는 "London Town"앨범 작업 후, 윙스를 탈퇴하고 Sea Level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크리스챤 뮤직으로 전향했다.

1977년 윙스는 대히트곡 "Mull of Kintyre"의 티비 홍보를 위해 3인조로 출연하기도 한다. 1978년 말경 새로운 양날개가 펼쳐졌으니 먼저 드러머 스티브 홀리(Steve Holly) - 그는 "With a Little Luck" 비디오에 출연하여 윙스를 잠시나마 4인조로 만들기도 했다 - 와 다음으론 기타리스트 로렌스 쥬버(Laurence Juber)가 그들이다. 드러머 홀리는 엘튼 존, 키키 디등과 레코딩 작업및 투어를 했었는데 그의 연주 스타일을 줄잡아 얘기하자면 팝스타일의 연주이다. 주버는 세션 기타리스트인데 데니 레인이 매카트니에게 영입을 추천했다. 로렌스 쥬버는 밴드에 새로운 사운드를 불어넣었다. 새 앨범 "Back to the Egg"에서 윙스의 작품중 가장 화려하고 재미있는 기타연주를 보여준다. 새로 결성된 5인조 윙스는 영국에서 몇몇 공연을 갖고 자선공연인 "캄푸치아를 위한 콘서트"에 출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공연은 당시 막 결성된 멤버로 리허설도 제대로 못하고 무대에 올라 피트 타운젠드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폴 매카트니가 난처해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캄푸치아 콘서트는 로케스트라로 불리는 초대형 밴드 결성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로케스트라 밴드는 윙스의 마지막 앨범 "Back to the Egg"에서 두곡을 연주하기 위해 20명이 넘는 록음악의 선구자들이 함께 모인 프로젝트 팀이다. 여기에는 The Who, Led Zeppelin, Faces, Pretenders, Rockpile, Elvis Costello's Attractions의 멤버들이 함께했다). 새 라인업의 윙스는 윌드 투어를 기획하고 1980년 1월 일본에서 그 첫공연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도쿄공항에서 폴이 마약소지로 체포되는 바람에 모두 무산되고 만다. 1980년 후반 윙스 멤버는 몇몇 세션을 갖지만, 이후 세션 멤버로 대채되고 81년 4월 데니레인의 발표로 공식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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