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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s Pot Bust Shocker Makes Him A Jailhouse Rocker
| 2007·02·07 10:43 | HIT : 1,835 |
High Times July 1980 By Harry Wasserman

* 이 글은 1980년 1월에 있었던 그 유명한 매카트니의 마약사건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기사의 특성상 문체가 굉장히 딱딱해서 재미는 없지만, 상당히 궁금해하실 내용이라서 올립니다



"저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은 죄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리화나에 대해서 공정하게 연구한 의학적 보고서를 보고 싶어요." 거의 반파운드의 마리화나를 소지한 혐의로 일본에서 강제 추방된 폴 매카트니가 말했다. 일본에서 예정된 11차례의 윙스 콘서트도 취소됐다.

"저는 감옥에 있는 동안 어떤 것들이 합법적이면서도 위험한 것인지 마음속으로 생각해봤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 약물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 담배, 위스키, 매춘부... 모두들 술이 몸에 안 좋은 것을 알고 있어요. 때론 사람이 죽을 수도 있잖습니까. 담배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것들이 마리화나보다 더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리화나가 사람 목숨을 앗을 수도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에요. 아스피린 따위도 위에는 안 좋습니다."

매카트니는 일본의 마약관련 법규보다는 미국의 마약에 관한 비교적 관대한 제도가 더 좋다고 했다. 일본에서 그는 그가 지난 7년간 체포된 기간과, 가능한 최대한도의 벌금인 2000달러를 이미 경험하고 지불했다.


폴 매카트니가 마약문제로 사람들의 이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와 "사랑의 여름"의 해인 1967년이었다. 1967년 7월 24일 "런던 타임즈"지에 한면짜리 대형광고가 실렸다. 그 광고의 내용인즉 마약 소지의 합법화와 마약소지로 구속된 이들의 석방, 마리화나의 의학적 유용성에 관한 국가의 연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Soma"라 불리는 단체가 실은 이 광고에는 저명인사 65명의 서명이 같이 실렸다. 여기엔 폴 매카트니를 포함한 비틀즈 멤버 전원과 그들의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 작가 Graham Greene, 정신분석가 R.D. Laing, 15명의 의사, 2명의 국회의원의 서명도 있었다.

매카트니는 영국의 NORML(마리화나 합법화운동)의 열성적인 지지자였다. 현재 이 운동은 록스타뿐만 아니라 코디 사령관, 쥴리 크리스티 같은 배우, 클래식 기타리스트 존 윌리암스등이 지원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런 불상사가 생기기전 매카트니는 벌써 세차례나 마약문제로 말썽을 일으켰었다. 1972년엔 스웨덴에서 마약을 밀반입 하다가 걸려 20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스코틀랜드에서도 마약소지로 벌금형을 받았다. 1973년에는 그의 스코틀랜드 농장에서 마약을 재배하는 혐의로 240달러 벌금형을 받았었다. 그의 아내 린다도 1975년 LA에서 마약소지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 하지만 구속까지 이어진 적은 없었다.


이번 사태는 일본 출입국에서 매카트니의 입국 승인을 이러한 전례를 이유로 거절한데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윙스와 공연 계약을 이미 체결한  Udo음악사가 압력을 넣어 입국 승인을 얻어냈다. 매카트니가 일본에 오는 것은 1966년 비틀즈 시절 이후로는 처음이었지만 일본 경찰 측에선 이미 매카트니를 요주의 인물로 점찍어놓고 있었다.

1월 16일 도쿄 국제공항에서 일본 관세청 직원은 폴을 체포했다. 그들은 폴의 옷가방 속의 두 개의 플라스틱 통안에 마리화나 219그램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거의 7.7온스나 되는 양이다).

"전 뭘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전 그때 미국에서 막 왔었잖아요. 그래서 마리화나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미국식 습관이 베어있었죠. 전 일본이 그런 면에서 그렇게 엄격하리라 곤 생각지 못했어요."

매카트니에겐 수갑이 채워졌고 관세청으로 끌려갔다. 당시 일본에는 즉결보석제도같은 건 없었다. 5시간의 심문 끝에 폴은 "제가 피려고 좀 가져왔습니다."라고 자백했다.

" 다음날 저는 마약단속반 본부로 조사 받으러 갔습니다. 손엔 수갑을 차고, 제 몸엔 밧줄이 묵힌 상태로 개 끌려가듯이 갔죠." 매카트니가 마약단속반 본부에서 심문 받는 6시간동안, 200여명의 팬들이 마약단속반 본부건물 앞에서 폴이 석방되길 바라며 밤을 지샜다. 어떤 이들은 울었고, 어떤 이들은 폴을 외쳤다. 린다와 다른 윙스 멤버들도 심문을 받았으나 그들은 혐의 없음으로 곧 풀려났다. 다음날 아침, 마약단속반 직원은 폴 매카트니는 현재 아주 건강하고 협조적이었으며 자신이 복용하기 위해 마약을 가져왔음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심문이 끝나고 마약단속반에선 매카트니를 감옥에 보내려 했으나 담을 에워싼 수백 명의 군중들이 고함치며 제재하는 바람에 밀려났다. 마치 60년대 비틀매니아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기동대가 출동해서 군중을 제지시키고 나서야 폴 매카트니는 감옥으로 보내졌다.


1월 18일 도쿄 지방법원은 폴 매카트니를 심문하기 위해 검찰청에서 10일간 구류해도 좋다는 판정을 내렸다.

"전 처음에는 감옥은 아주 야만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뚝뚝한 인상과는 달리 교도관들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더라구요. 우린 농담도 했고, 같이 노래도 불렀죠 "Baby face"나 "Red Red Robin"같은 곡들요. "Yesterday"를 불러달라는 요청도 몇 번 받았습니다. 제가 그 곡을 부르면 그들이 박수를 쳤죠. 좀 웃기죠?"

그는 감옥에서의 하루를 얘기해줬다. "저는 아침 6시에 일어났죠. 일어나선 바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점호를 받았습니다 ... 마치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처럼요 ... 교도관이 "22번!!!"하고 부르면 전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전 정말로 그런 것들을 했어요. 별로 반항할 생각은 없었죠."

점호가 끝나고는 20분간의 운동 시간이 있었고 그 다음에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아침식사로는 해초와 양파 수프가 나왔다. "아침에 콘플레이크만 먹다보니 그렇게 맛있지도 않더군요." 점심은 빵과 쨈이었다.

오후엔 마약단속반 직원이 와서 심문을 했다. 밤에 불이 꺼지는 8시까지 그는 감옥에서 독서도 할 수 있었다. 그는 얇은 매트리스 위에서 자야했었다고 말하며 "전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싶었지만... 별로 불만은 없었습니다. 사실 전 잘 대접받았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교도소 측은 폴이 기타를 가져다달라는 부탁은 거절했지만 폴의 측근이 담요, 옷가지와 음식 등을 가져오는 것은 허락했다. 폴 매카트니는 감옥에서 친구도 두명 사귀었다. 한 명은 살인죄로 기소된 자였고, 한 명은 폴과 마찬가지로 마약소지로 들어온 자였다.


폴의 변호사 리 이스트만(장인이기도 하죠)은 도쿄로 날아가 일본인 변호사 타스코 마스코와 함께 방어전선을 폈다.  케이지 요네사와 검사는 D.W.F(이게 뭔소리래요?)와 사건을 의논했다. 영국대사관의 수석비서관 Warren-Knott는 1월 19일 미국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케네데 상원의원은 매카트니 사건에 관해 알고싶어했죠. 매카트니와 그의 그룹 윙스는 곧 미국에서도 공연을 할 예정이었으니까요." 만일 매카트니에게 유죄가 확정되면 현 이민법상 미국비자도 거절될 상황이었다.


매카트니는 1월 25일 석방과 함께 강제 출국 당했다. 어떻게 해서 석방되었냐는 질문에는 "나한테 묻지 말고 저들한테나 물어보시죠. 저들이 나보고 나가도 좋다고 얘기했으니..."라고만 답했다. 일본 당국은 폴 매카트니가 일본의 엄격한 법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풀어준다고 밝히면서 "죄를 뉘우치도록 약간의 제재를 준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감금사건으로 매카트니는 윙스 일정 취소로 인한 손해 말고도 , Udo음악사에 끼친 손해 £200,000를 지불했고, 그의 변호사와 가족들에게 하루 £10,000의 비용이 들었다.

폴 매카트니가 강제 추방당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벌써 20년 전에 조지 해리슨과 함께 콘돔에다 불을 붙여 함부르크의 한 록클럽에 방화한 사건 때문에 서독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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