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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On The "New Statesman"
| 2007·02·07 10:47 | HIT : 1,390 |
By Steve Richards

* 이 글은 1997년 "New Statesman"지에 실린 인터뷰의 번역입니다. 폴의 두 번째 클래식 대작 "Standing Stone", 전기 "Many Years From Now"를 발표할 즈음의 인터뷰입니다.



폴 매카트니의 런던 사무실 지하에 있는 스텝들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늦은 오후였지만 아직도 다들 어젯밤 로얄 앨버트 홀에서의 공연이야기로 떠들썩했다. Montserrat 기금 모음을 위한 공연에는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들이 참석했었다(* Monteserrat는 영국령 제도인데요, 이곳에서 일어난 화산폭발로 인한 난민을 돕기 위해 죠지마틴이 주관한 자선공연이 "Music For Montserrat"입니다. 폴은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데, 죠지마틴의 소개로 무대에 나와서는 Yesterday를 혼자서 부르고,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Golden Slumbers/Carry That Weight/The End, Hey Jude, 그리고 Kansas City를 부릅니다).

지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폴 매카트니 뿐인 것 같았다. 그는 55살의 나이가 무색하게 젊게 보였고, 어젯밤 "비길 데 없는 최고의 밴드"(에릭 크랩튼, 마크 노플러, 스팅, 엘튼 존)와 함께한 공연이 정말 즐거웠다고 말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때가 마침 내가 고든 브라운을 인터뷰하고 나서였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자, 폴은 서먹한 분위기를 깨러 브라운 장관의 흉내를 내었다.



폴은 감정을 다 드러내놓기보다는 다소 방어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주에 출간될 그의 공인된 전기 "Many Years From Now"에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얘기가 실릴 예정이다. 그는 그간 여러 곳에 실렸던 왜곡된 존과 자신의 관계에 심히 불쾌했다고 얘기한다. 또, 다음주에는 아마도 그의 가장 야심에 찬 앨범, "Standing Stone"라 명명된 교향적 작품이 발매된다. 폴은 록스타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데 익숙지 않은 클래식 평론가들의 반응에 꽤 신중한 태도였다.

폴은 늘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었지만, 스탠딩 스톤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넓히는 모험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실험적이고 상상력 있는 비틀은 존 레논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매카트니가 자신의 전기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그의 새 작품에 대한 관심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매카트니는 전기("Many Years From Now")를 통해 그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스탠딩 스톤")와 과거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결부시키려고 한다.

"몇년전부터 전기를 위해 인터뷰에 응해왔지요. 그러면서 도대체 제가 그러한 인터뷰에 응해야 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제 자신을 정당화시키려고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하지만 전기집필에 참여한걸 후회하진 않습니다. 알다시피, 존이 저보다 한 살하고 반이나 나이가 많았지만 우린 쌍둥이처럼 자랐습니다. 주말이나 히치하이킹을 할 때, 또 다른 때에도 우린 말 그대로 침대를 같이 쓰며 자랐어요. 어렸을 때 곡을 같이 쓸 때는 그가 내 침대에 앉아있거나, 또는 제가 존의 침대에 앉아있곤 했죠. 아니면 우리 집 객실에 있거나, 존의 집 객실에 있거나요. 물론 존의 이모 미미가 우릴 현관 밖으로 쫓아낼 때가 많았지만요."

"그렇게 우린 쌍둥이처럼 자랐고, 60년대에는 둘 다 전위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죠. 존이 웨이브릿지의 골프클럽에나 있을 때, 전 런던에서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요. 전 알렌 진스버그, 버트랜드 러셀같이 제가 살던 첼시 지구 근처의 유명 인사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당시는 제 삶을 풍부하게 해준 시기였죠. 제 여자친구(제인 애셔)는 연극배우였고, 우린 많은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저는 윌리암 버로우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어요. 저는 이러한 일을 존이 요코를 만나기 1년전부터 했다고요. 존이 시골에서 올라와 하는 말이라곤 '와... 네가 이런 일을 했구나. 정말 멋진데...'하고 감탄하는 게 고작이었죠."

매카트니는 당시 레논 보다는 자신의 생활 스타일에서 비롯한 음악적 혁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Revolution 9'는 아마 비틀즈와 함께한 존의 가장 실험적인 작품일 겁니다. 하지만 1년도 전에 저는 'Carnival Of Light'라는 전위적 작품을 썼었죠. 하지만 최근의 비틀즈 앤솔로지에 실리지 못했는데요, 앤솔로지 기획자들이 상업성을 고려해 반대했거든요. 하지만 그 작품은 지금 들어도 신선한, 15분이나 되는 전위적 작품이에요. 전 그 작품을 좋아하죠. 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 케이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는 제게 큰 영향을 미쳤거든요. 제가 테이프 레코더 두 개를 갖다놓고 어떻게 하는지 존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존은 'Revolution 9'을 겨우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Two Virgin'도 만들었죠. 제가 아니었으면 존은 그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죠. 존은 불행히도 그런 기술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저에겐 '발라드 가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더군요. 사랑에나 빠지는 놈으로 묘사되고요. 저는 '귀여운 비틀'로 불렸죠. 사실 직업상 그런 거지 전 전혀 귀엽지가 않아요. 존을 깍아내릴 생각은 없어요. 또, 저 자신을 정당화시킬 생각도 없고요. 단지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고 싶을 뿐입니다. 제가 그 모든 것을 존한테 배웠다고는 생각지 말아주세요. 만일 누군가가 그 시기에 대해 역사적으로 연구를 해본다면 존이 저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동안 저는 제 손가락이나 빨며 놀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될 겁니다."



매카트니가 게으름에 빠지거나,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60년대의 분위기에 자아도취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올 여름 발매된 그의 최신작 "Flaming Pie"는 대호평을 받았다. 그의 미술작품 전시회가 곧 독일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리고 다음주면 스탠딩 스톤이 발매되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이번 달 말 로얄 앨버트 홀에서 초연을 한다. 스탠딩 스톤은 75분이나 되는 야심작이다. 폴은 자신의 작품을 교향시라고 불렀다.

매카트니-스타일의 멜로디는 귀에 곧 들어오나 구조나 규모가 지금까지 시도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레논과 매카트니가 곡을 쓸 때면 - 함께 쓰건 각자 쓰건 - 3시간이 채 안 걸렸다고 한다.

"존이랑 저는 방법을 알고있었거든요. 두 개의 소절과 후렴구, 중간 부와 새로운 소절, 다시 후렴. 자 이번엔 단편 소설이 아니고, 장편소설이에요. 그 동안 단편소설을 많이 써 왔으니 장편소설이 나오기에 적절한 시기이죠. 비틀즈 곡 중 긴 편인 'Hey Jude'와 비교하자면 75분 동안 어떻게 계속 흥미를 유발하느냐의 스케일 문제죠."



매카트니가 악보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처음엔 폴이 혼자서 피아노로 작업을 시작한 이번 작품이 풀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매우 독특하다. 그것은 매우 값비싸고도 힘든 작업이었다. 매카트니는 리챠드 로드니 버넷, 존 할리, 데이빗 메츄같은 정규음악교육을 받은 음악인을 데려왔다. 비평가들이 진정한 작곡가는 그들이라고 의심할 것이라는 것을 폴은 안다. 하지만, 나처럼 레코딩 작업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것은 매카트니의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해줄 것이다.

여러 클래식 음악가들이 구석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을 때 폴이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모든 과정을 주도해 나갔다. 하지만 폴에게 매우 힘든 작업이었음에는 틀림없다. 록앨범을 녹음할 때면 그는 제작도 포함한 모든 분야에 정통해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 비틀즈 멤버로서 남은 일생동안 뻐기면서 다니기보다는 현재 가장 뛰어난 클래식 작곡가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쪽을 택했다.

"한 두 번 막힐 때가 있었어요. 저는 제 컴퓨터에서 그 부분을 리챠드 로드니 버넷에게 보냈죠. 몇분있다가 '형편없음'이라고 쓴 답신을 받았습니다. 전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죠. '리챠드, 그건 우리 선생님이 내 작문 숙제에다 쓰시던 말인데. 당신은 민감한 예술가잖아.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평균에 조금 못미침'이라고 써줘.'"

매카트니는 자기 자신을 아직 학생으로 여기지만, 그래도 이번 작품은 아주 자연스럽게 발전된 것으로 본다.

"모든 것을 꿰뚫는 실이 있다고 봐요. 제 관심은 처음엔 로큰롤 가수에게서 시작됐죠: 엘비스, 리틀 리챠드, 버디 할리, 척 베리. 다음엔 비틀즈와 함께 자신의 곡을 쓰는 것으로 옮겨갔는데, 죠지 마틴이 'Yesterday'에 현악4중주를 넣자고 제안하더군요. 저는 그가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을 하는 것을 종종 도왔죠. 그러면서 제가 새로운 음악세계에 빠져들고 있음을 알았어요. 'For No One'에는 프렌치 혼 솔로를 넣었고, 'Eleanor Rigby'에도 현악 반주를 넣었죠. 밴드는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고요."

"이제 저는 더 큰 모험을 하는 거예요. 엘비스 코스텔로나 다른 이들도 클래식 작품들을 내놓았죠. 결국엔 음악이 있는 거예요. 저에게 경계선은 필요치 않아요."



매카트니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을 동시에 갖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아버지께서는 항상 라디오를 끄셨죠.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다른 방향으로 음악에 접근하셨다는 것을 이젠 알겠어요. 아버지는 열정적인 째즈 팬이셨죠."

"저는 몬테베르디 작품을 많이 들어요. 그가 음악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전 들을 수 있죠. 그는 많은 화성을 사용하지 않아요. 초기 비틀즈 처럼요. 저는 쇼팽도 좋아하죠. 좋은 것은 얼마든지 더 있어요. 레코드가게에 있는 많은 음반들 중 뭐가 들을만한 건지는 저도 모르죠. 하지만, 흥미 있고, 매력적일 것이라는 것을 전 알아요. 며칠 전에 누가 제가 메시앙을 좋아할 거라고 얘기하더군요. 하지만 전 메시앙이 누군지도 몰라요."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리버풀 액센트로 계속 이야기한다. 그는 전성기 시절의 기억에 많이 의존하는 것 같았다. 계속 아버지와 존 레논, 숙제, 학교 이야기를 했다. 그의 클래식 음악에서의 첫 번째 대 모험이었던 "Liverpool Oratorio"가 발표될 때에도 이런 친숙한 소제들을 안식처로 삼았다. 이제 그는 록앨범 작업을 중단함이 없이 클래식 음악작업도 같이 하고 싶어한다.

"저는 한번에 여러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버지께선 '티비보면서 숙제하지 말라고 늘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럭저럭 잘 해왔어요. 저는 스탠딩 스톤과 플레이밍 파이작업을 같이 했죠. 제게 음악의 경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는 라디오 1번 채널을 들으며 런던으로 왔다고 했다.

"보통 그 채널을 잘 안 들어요. 그런데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60년대 스타일의 곡들을 많이 틀어주더군요. 60년대 우리가 만들던 음악은 정말 멋졌어요. 최고의 곡들을 썼죠. 만일 'Revolution 9'같은 곡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록음악이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 종류의 음악은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있죠."



우리가 비틀즈에 열광했던 무엇인가가 오늘날의 10대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오아시스는 레논/매카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매카트니는 내 모든 질문에 답하지는 않고 그들에 대해 천천히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우리 음악에서 나온 거죠. 그런데 그들은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들의 판단이 옳기를 바랍니다. 사실 그들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제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죠. 오아시스의 미래는 자신들의 문제예요. 그들의 노래를 가끔 듣고 멋지다고 생각하죠. 저는 그들이 자신들의 전설을 만들어 나갔으면 해요. 그들이 운도 좋았으면 좋겠구요. 그들을 라이벌로 생각지는 않아요. 아시다시피, 누구에게나 기회와 능력이 있는 거잖아요. 스파이스 걸스가 자신들의 재능을 뽐내도록 내버려두세요. 저는 그런걸 하기 싫어요. 또 그럴 능력도 없고요.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는 겁니다."

오아시스는 비틀즈의 음악만을 따라하진 않았다. 노엘 갤로거는 레논과 매카트니처럼  정치적 발언도 하길 즐긴다(토니 블레어 총리가 주관한 파티에 나타난 그의 이야기는 헤드라인을 장식했었다). 레논이 정치에 있어 십자군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매카트니 역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몇 년간은 애매한 말로 얼버무렸지만, 마리화나 사용의 비범죄화 문제에 폴은 굳은 지지를 보냈다.

"저는 마리화나의 비범죄화를 지지합니다. 사람들은 어쨌든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어요. 근데 그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교도소에 모두 보내야하나요? 교도소로 들어가는 순간, 그때부터 진짜 범죄자가 되는 겁니다. 교도소에서 모든 범죄를 배우게 되죠. 제가 일본에서 감옥에 수감됐을 때, 그들은 저를 갱생하려고 시도도 않더군요. 단지 저를 감방 안에 9일 동안 쳐 넣었어요. 그때 '그래, 감옥에 가면 이런 거구나'하는걸 알았죠. 아무 것도 뉘우치거나 배우는 것이 없었습니다."



폴은 최근 여우사냥 반대운동에도 적극적이다. 레논의 말처럼 그의 주장은 순수할지 모르나 그의 말 한마디는 어떤 정치가의 말보다도 영향력이 있다.

"정말 옳은 일이에요. 여기 좋은 예가 있어요. 자신의 땅에 토끼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농부들이 있어요. 저는 그들이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러면 앞으로 토끼를 영영 못 볼 테니까요. 주목할 것은 토끼 수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건 바로 그들이 원하는 여우사냥을 그만둠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는 거죠. 여우사냥을 하지 않는 건 그들 자신의 이익과도 직결되거든요.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할 수는 없잖아요. 말을 타며 여우를 사냥하는 것은 물론 재미있겠죠. 하지만 그들은 다른 것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다음 주에 매카트니는 석세스의 농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것이다. 스탠딩 스톤뿐 아니라 다른 많은 프로젝트, 노래들, 앨범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폴의 친구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폴은 그가 20대 초반일 때의 열정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요. 그럼 20대에 존과 스튜디오에 함께 있었을 때면 과연 어떠했을 지는 신만이 아시겠죠."



매카트니는 무서운 기세로 계속 작업을 해나갈 것이다. 그는 음악을 즐기고... 그에게 끊임없이 영감이 떠오르니까. 인터뷰의 마지막에 폴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순간을 잡고 싶은 충동을 갖고 있어요. 제 음악이 그렇고, 그림이 그러하죠. 린다의 사진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과 함께 전날 밤 생일 케잌의 촛불을 끄는 순간. 그러한 순간도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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