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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Albums, Old Songs Keep McCartney Going
| 2007·02·07 10:48 | HIT : 1,493 |
Bernade Mcnulty Yomiuri Shimbun London Bureau

* 이 글은 요미우리 신문에 실린 폴 매카트니의 인터뷰를 번역한 것입니다.
앨범 윙스팬이 나오기 직전의 인터뷰입니다. 물론 영어로 된 것을 보고 번역한겁니다 ^^a




폴 매카트니가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앨범 "1"의 대성공에 이어 오는 5월에는 윙스 앤솔로지, 윙스팬: the Hits and History of Paul McCartney(Toshiba EMI)가 발매될 예정이다. 매카트니의 두 번째 밴드의 회고록인 이 밸범에는 더블 CD에 40곡이 실릴 뿐 아니라, 미공개 곡과 보너스 트랙이 일본판 버전에 특별히 실릴 예정이다. 이 앨범은 본래 매카트니의 딸 메리가 제작한 다큐멘타리 필름과 함께 기획되었다.

최근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앨범 "1"과 윙스 프로젝트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것이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고 매카트니는 밝혔다.

"아마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도 없을겁니다. 사실 윙스팬 제작을 시작했을 때 비틀즈"1"은 기획조차 되지 않았거든요. 정말 타이밍이 좋았어요"



매카트니는 1971년 비틀즈 해산의 여파로 밴드 윙스를 결성했다. 대학의 소규모 무대를 돌며 투어를 하자는 -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단순한 발상으로부터 시작했던 밴드이지만 윙스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의 하나로 성장했다. 폴의 두 번째 밴드는 10여년간 지속되었고, 11개의 앨범과 17개의 히트곡을 낳았을 뿐 아니라 그 기간동안 린다와의 가정생활, 세명의 자녀들도 얻었다.

하지만 밴드는 비평가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며 비틀즈와 끊임없는 비교의 대상에 오르곤 했다. "항상 비틀즈의 그림자가 따라다녔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를 때도 말이죠. 비평가들은 우리를 실랄하게 비난했죠. 그러다보니 우리도 어느덧 비평가들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누구든지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듣다보면 머리에 세뇌가 되잖아요. '비틀즈는 그렇게 위대했으니, 우린 비틀즈처럼 좋은 음악을 만들진 못해' 이런 식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결국 비평가들의 비난에 대항하여 싸웠죠. 우리가 우리만의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싸워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앨범 "Band On The Run"의 성공과 그 앨범이 가져온 전 세계적인 반향은 폴의 음악적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76년도에 우리는 대규모 미국 순회공연을 가졌습니다. 정말 환상적이었죠. 비틀즈가 했던 것보다도 훨씬 규모가 큰 대규모 공연이었습니다. 우린 비틀즈의 성공을 뛰어넘으려고 노력만 했던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보다 더한 성공을 거두었죠."

"성공스토리가 두 개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죠. 게다가 두 번째 성공이 첫 번째 성공보다 더 클 때는요..."



윙스팬을 제작하는 과정은 매카트니의 음악을 재발견하는 항해와도 같았다. 옛노래들을 다시 들으며, 그 노래들을 친구들에게 들려주며, 그는 밴드 윙스가 남겨준 유산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윙스의 히트곡이 그렇게 많은지도 몰랐어요. 우리가 그렇게 많은 성공을 거두었는지를 제 자신도 잘 모르고 있었던거죠. 윙스의 곡을 들려주자, '아! 이 노래가 윙스의 노래였어?'라고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기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시기라서 더 흥미로운 겁니다. 100만장 이상 팔린 싱글이 17곡이나 되더라구요. 그 정도면 한 개의 CD를 제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죠 - the hits CD. 하지만 제가 좋다고 생각한 곡은 그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CD에는 밴드의 역사를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죠; 히트곡은 아니지만, 좋은 노래이고, 중요하거나 비범하거나 역사적인 레코딩을 채우는 것은 어떨까 하고요."

"결국 2개의 CD에다 담기에 충분한 곡들이 선곡되었습니다. 저는 이 녹음들이 너무 좋아 차에서 항상 틀어놓고 들었죠."



새로운 앨범에는 윙스시절의 노래들이 주로 선곡되었지만, 매카트니는 그가 솔로 아티스트로서 녹음한 곡들도 몇곡 포함시켰다.

"전 'Pipes of Peace'나, 'No More Lonely Nights"같이 대 히트를 기록한 당시의 곡이지만 혼자 녹음했다는 이유로 함께 싣지 않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곡한 것은 윙스가 아니라 폴매카트니 & 윙스이죠. 두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면 어느 곡이라도 좋은겁니다. '윙스'에 한정하지 않음으로 우린 선곡에 보다 자유로왔죠."

"그래서 앨범 타이틀을 '윙스팬'으로 정한겁니다. 윙스시절이란 뜻이지만 윙스시절에 아주 근접한 시간대도 포함하고 있는겁니다. 부제는 '폴 매카트니의 힛츠와 히스토리'이죠. 그러니까 반드시 윙스만은 아니예요."



윙스의 역사는 폴과 린다와의 결혼생활과도 떼어놓을 수 없다. 윙스의 라인업이 6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린다는 꾸준히 자리를 지킨 멤버였다. 또, "My Love"같이 폴의 주옥같은 멜로디중 상당수는 린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윙스팬을 제작하면서 폴은 린다와 함께 했던 지난 삶을 다시 조명해볼 수 있었고, 1970년대 맹목적 록찬양주의자로부터 여성멤버라는 이유로 그녀가 받은 비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윙스팬은 린다가 얼마나 뛰어난 여성인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녀는 다재다능했어요. 그녀를 다시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윙스팬을 만든 이유는 충분합니다. 단지 여성이 밴드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했어요. 당시 록밴드에 여성멤버는 불문율이었습니다. 지금은 여성 록커들도 아주 많지만요. 당시에는 안그랬어요. 그녀의 인터뷰를 다큐멘타리를 통해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녀는 아주 현명하고 사리분별이 뛰어났습니다."



비틀즈라는 망상을 쫓아 버렸고 전세계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폴은 또다른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1980년, 공연표는 이미 매진이 된 상태에서 윙스멤버는 일본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나리타 공항에서 마리화나 불법소지로 매카트니는 체포되었고,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속에서 열흘동안 수감되었고, 출감후 곧 강제추방되었다. 물론 투어일정은 모두 취소되었다. 당시 사건을 회상하건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마리화나를 가지고 갔는지 자신도 잘 이해가 안된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상황이 좀 이상했어요. 일본으로 출발했지만 사실 투어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리허설을 충분히 못한 상태라 많이 불안했죠. 평소에 리허설을 많이 하는 편인데, 새로 조직된 윙스멤버와는 충분히 연습을 못했었어요. 일본에 도착하고 공연전까지 며칠간의 여유가 있었죠. 전 그때 제대로 리허설을 하고 싶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일본에 갈 때는 마약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충고해주더군요. 저희는 그러지 않을거라 얘기했죠."

하지만 폴은 이런 충고를 무시하고 말았다.

"아직도 왜 당시 마약을 가지고 갖는지 잘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출발하기 얼마전 전 충동적으로 마약을 좀 챙겼습니다. 상당한 양이었죠. 다큐멘타리를 보시면 당시 세관의 얼굴을 비추어줍니다. 그는 단지 가방을 의례상 열어봤을 뿐인데요... 저는 마약을 밑에 숨기지도 않았었죠."

"지금 생각해보자니, 당시 상황에 저는 몹시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도대체 무엇을 한거죠? 그건 미친짓이었죠. 하지만 제 스스로 한 일이었어요. 저는 일본 투어가 걱정됐거든요. 결국 투어는 무산됐고, 공연대행업체에게 손해배상금으로 백만 파운드를 지불해야했죠. 표가 이미 다 팔린 상태였거든요. 단순히 감옥에 10일간 있었던 것보다 더 혹독한 고통을 감수해야했죠."

"당시 그 사건은 제게 치명타였죠. 저는 더 이상 투어를 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윙스도 여정을 접어야했구요. 저는 모든일에 진력이 났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싶었어요."

영국으로 돌아온 매카트니는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저는 제 아이들을 위해 제 경험을 책으로 썼습니다.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죠. 저는 돌아오자마자 바로 써내려갔어요. 제 머리속에 기억이 아직 생생할 때 말이죠. 그리고 제목을 "Japanese Jailbird"라고 붙였죠. 저는 그 책을 제 자녀들과 몇몇 친구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비틀즈 '1'의 대성공에 매카트니는 무척 기뻐했다. '1'은 젊은 청중들에게 비틀즈의 음악을 소개해주었다.

"정말 멋진 음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크리스마스 기간동안 '1'만 틀어놨어요. 그 노래들의 짜임새에 다시금 감탄했죠. 건축가가 자신이 전에 만든 건물을 다시 바라보듯이 말이죠."

"음반의 구성이 젊은이들도 듣기 좋게 되있더라구요. 이제 비틀즈의 음악은 모든 세대들에게 전파된거죠.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고리타분한 옛날노래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요. 그냥 좋은 음악인거죠. 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녀들을 위해 앨범 7장에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비틀즈의 재결합은 결국 오지 않았다.

"전에도 밝혔지만, 존이 없기 때문에 비틀즈는 이제 재결합을 할 수 없습니다. 윙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린다가 없기 때문에 윙스는 다시 결성될 수 없는거죠."



하지만 매카트니는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만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비교적 낙천적인 성격에다가 음악이외의 다른 예술분야에도 무척 관심이 많다. 그의 자작시집이 출간됐을 뿐 아니라, 미술작품 전시회도 가졌다. 새로 작곡한 곡들로 채워질 새앨범은 올 가을 발매될 예정이고, 클래식 합창곡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매카트니는 전통적인 음악쟝르에 구속받길 싫어한다.

"어떤이들은 음악을 구분짓길 좋아하죠. 자신은 포크음악만 듣는다거나 째즈만 듣는다는 식으로요. 저는 모든 음악을 좋아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쇼팽부터 시작해서 냇 킹 콜, 라디오 헤드, 비틀즈, 인도음악까지 다양하죠. 저는 음악을 가리는 취향이 아니거든요."

"많은 이들이 이런 구분과 경계, 장벽을 음악 이외의 것에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운좋게도 1960년대 당시 아주 젊을 때부터 이런 경계로부터 자유로왔죠. 제 마음이 자유로와지니까 원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열정과 영감이 매카트니에게서 뿜어져나오고 있다. 자신이 아직도 건강한 것은 오랜 채식생활 덕분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제 린다의 죽음을 접어두고 자신의 앞날을 내다보고자 한다. 또, 투어의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았다.

"투어를 못할 이유도 없죠. 저는 58살이지만 사실 제 자신은 그 나이가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칩니다. 전 음악을 사랑하고 제 맘속에서 그 열정은 변치않죠. 저에겐 의욕이 너쳐나고 있어요. 제 몸도 아직 건재하구요."

"린다가 죽고나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몇년간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의 병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매우 가슴아팠죠. 하지만 이제 그 슬픔도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터널의 다른 출구로 빠져나오는 것과 같은 감정을 요즘 느낀답니다. 일에 대한 의욕도 다시 생겨 이제 새 앨범 작업도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전 혼자 만이 아니었죠. 윙스가 함께 있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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